전공만 하려던 피아노,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 저를 ‘행복한 피아노 선생님’으로 만들었습니다. 실리콘밸리 출장 레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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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전공 수업을 처음 듣기 시작했을 때, 수업마다 교수님들이 첫 시간에 꼭 설문 조사를 하셨어요.
“왜 음대를 지원했나요?”, “왜 이 악기를 전공하려 하나요?”, “졸업 후엔 어떤 일을 하고 싶나요?”
다시 말해, “넌 왜 음악을 하고 싶니? 장래희망은 뭐야?”라는 질문이었죠.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에게는 미래를 생각해보는 아주 의미 있는 질문이었을 텐데, 이미 세 아이를 키우고 있던 저에게는 사실 이 전공을 가지고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 적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대답은 늘 한결같았습니다.
“피아노 치는 게 너무 좋아서요. 더 배우고 싶었어요.”
그게 제 진심이었고, 그 외의 대답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피아노를 전공만 하려 했던 이유
학교에 다니던 내내 저는 음악 그 자체에, 그리고 피아노를 치며 음악을 만들어내는 그 과정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단 한 번도 제가 ‘피아노 선생님’이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솔직히 상상만 해도 지루하고 갑갑한 직업처럼 느껴졌거든요.
게다가 음악을 처음 접하는 아이들에게 C, D, E, F, G, A, B, C (도레미파솔라시도)부터 가르친다고 생각하니 숨이 막히는 듯했어요.
중급이나 고급 학생들이야 괜찮겠지만, 진짜 초보자들을 제가 어떻게 가르친단 말인가요?
더구나 영어로요?
어린아이들의 영어는 성인보다도 더 알아듣기 어렵다고들 하잖아요.
그래서 전 정말이지,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예상치 못한 시작, 그리고 찾아온 행운
그러다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 저는 이혼을 하게 되었고,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피아노를 가르치는 것뿐이었습니다.
여전히 영어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부담이 컸지만, 일을 해야 했기에 용기를 내어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한 사립 초등학교의 방과 후 활동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고, 또 학과 사무실을 통해 한 피아노 선생님을 소개받게 되었습니다.그분은 출장 전문 피아노 교사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셨는데, 학생을 30명 넘게 가르치고 계셨고, 한 달 수입이 웬만한 대학 교수님보다 많을 정도였어요. 가정을 책임지다 보니 토요일까지도 수업을 하셨고, 학생 수가 너무 많아서 한 가정의 세 자녀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으니 저에게 맡기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저의 행운은 바로 거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학생 가족은 로스 알토스의 수준 높은 동네에 사는 의사 부부였고, 저를 무척 만족스럽게 여겨 동네 친구들에게 소개를 해주셨습니다.
출장 피아노 수업은 그 한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 이후로도 출장 수업을 원하는 학생들이 이어졌고,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출장 레슨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내게 준 선물
사립학교 방과 후 수업에서 처음 만난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제가 생각했던 ‘지루하고 갑갑한 직업’이라는 선입견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금세 애정이 생기더라고요.
아이들이 잘하지 못하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잘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니겠어요?
그래서 인내심은 자연스럽게 생겼고, 아이들이 혹시나 저 때문에 음악을 싫어하게 될까 봐 한마디 한마디 더 조심스럽게 하게 되었습니다.
절대 아이를 비난하거나 “이건 못했어”라는 식으로 지적하지 않으려고 했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아이든 어른이든 칭찬을 통해 배우면 자신감이 생깁니다.
아이들이 제 수업에서 실망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음악을 이어가는 걸 보며, 저 역시 더 기쁜 마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초보자를 가르칠까, 걱정했던 그 우려는 순수한 아이들 덕분에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내가 이 일을 사랑하게 된 이유
지금도 여행을 길게 다니고 있으면, 문득문득 아이들이 그리워집니다.
여행 중에 학생 부모님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을 때면, 하트를 뿅뿅 날리며 아이들에게 보고 싶다고 꼭 전해 달라고 부탁하게 됩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 바로 수업이 있을 때도 있어요.
몸은 피곤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아이들을 보면 금세 피로가 사라지고 행복해집니다.
학생 수가 많다 보니 일정이 빠듯해서 하루가 끝나면 녹초가 되지만, 다음 날 다시 아이들을 보면 또 힘이 납니다.
피아노 가르치는 일이 지루하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요?
막상 해보기 전까지는, 그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를 수 있다는 걸 저는 배웠습니다.
그토록 지루할 줄 알았던 이 일이, 저에게는 오히려 기쁨이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아주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행복한 피아노 선생님, 바로 저입니다.
